2024. 11. 19. 00:09ㆍ기타/생각
평소에 잡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잡생각의 주제별 빈도는 7~10일에 한 번인 것 같다.
어느 날 '강아지가 착한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면,
이틀 후엔 '지구상 최초의 개발자'에 대해 생각하고,
이틀 후엔 '우주 및 생명의 본질'에 대해 생각한 뒤,
이틀 후에 다시 '강아지가 착한 이유'로 돌아온다.
일주일마다 나만의 가치관이 다져지는 기분
그리고 바로 오늘
내 긴 연애기간 동안 풀리지 않던
'사랑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가치관이 확립됐다.
나의 모든 잡생각에 해당되는 말인데
'~인가?'에 대한 생각이
'~이다.'로 매듭지어지지 않았던 게 늘 고민이었다.
특히나 사랑이나, 인간의 행동 심리? 같은 게
내면에서는 평서문으로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았다.
어릴 때 책 좀 많이 읽을걸
'사랑'을 떠올리면, 나는 나도 모르게 이성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다 가족으로 넘어가고, 친구로 넘어간다.
친구로 생각이 넘어간 뒤로는, '친구'라는 범위를 정의하느라 바쁘다.
10대 ~ 대학생 까지는 같은 집단 내 동갑만이 친구라고 생각했다 보니
'친구'를 떠올리면 동갑 친구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은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주변인들이 나에게 친구라,
출근길에 인사하는 버스 기사님, 지하철에서 좀 들어가라고 짜증 내는 아저씨들
게임에서 만나는 사람들, 산책 중에 가볍게 인사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나는 이성이 차지하는 사랑의 비율이 제일 크다.
단순히 여자친구의 존재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여자친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사랑한다.
함께 지내는 순간들, 함께 알아가는 사람들
똥고집인 나의 가치관이 너로 스며드는 순간들을 사랑한다.
사랑의 형태는 비슷하다.
5살이든, 중학생이든, 대학생이든, 중년이든 인간의 모습이 어떠하든
나의 모든 사랑엔 항상 목적이 있었다.
10대 때는 그 목적을 자각하지 못해서, 그저 설렘만 가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자친구'라는 존재와 '특별한 무언가'를 하는 게 내게 행복을 줬던 것 같다.
사랑할 때는, 너무 깊이 빠져버려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차 잊어버린 채
내 마음의 질문이 뭔지도 모른 채 해답만 찾곤 했었다.
지금의 내 사랑도 형태는 그때와 비슷하다.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사랑을 하고 있다.
그때와 다른 건, 목적이 없는 사랑을 하고 있다는 건데
목적이 처음부터 없진 않았고, 중간에 사라졌다.
지금의 목적은, 그리고 나에게 '사랑'이란 '그 사람 대신 살아가는 것'이다.
문장만 보면 폭력적이지만
'그 사람이라면 뭐든 해줄 수 있다' 식의 행위적 희생이 아니라 정신적 희생을 의미한다.
만날 수조차, 만날 이유조차 없던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시간을 깎으며 살아간다.
생존이 1순위인 인간이다 보니
각자 상처받지 않을 가면을 쓴 채
방패로 막고, 방패로 때리며 시간을 함께한다.
지난날 나를 돌아보니,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했던 시절에 가장 많이 다퉜다.
'나는 너에게 멋진 사람이 될 거야'로 시작했던 마음이
'나는 너에게 멋지지 않으면 안 돼'로 변하고
'멋지지 않은 나는 숨겨야 돼'가 되어갔다.
그러다 보니 내 내면과 외면의 간극은 커져갔고
그 간극의 말단을 양손으로 붙잡고 있던 너만 힘들게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가장 허무한 건,
이 모든 감정은 '철없던 때였다'로 함축되곤 한다.
그 사람 대신 살아간다는 건, 선택의 집합체인 나라는 인간이
너를 위한 선택을 하겠다는 것이고
그 마음보다 큰 마음은 없다고 확신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에,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너를 사랑한다.
지금의 내가 볼품없어도, 나는 내가 찬란하고
지금의 너를 스스로 볼품없다 해도, 나는 네가 빛나는 순간으로 가득하다.
오히려 너의 소중함을 알려줄 수 있을 테니
볼품없는, 볼품 없어질 너의 모습을 사랑한다.
가족, 친구, 자연 모두에 해당되는 사랑을 드디어 찾았다.
그 존재 대신 살아간다는 것
어우 이거지